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알 아문센 (문단 편집) ==== 남극점 정복 ==== 1910년 6월 2일, 노르웨이 국왕 [[호콘 7세]]와 [[모드 샬럿 메리 빅토리아|모드 왕비]]가 프람 호를 방문하였다. 1910년 8월 9일, 아문센은 프람 호에 19명의 승무원을 싣고 남극으로 출발했다. 처음에는 목적지를 북극이라고 하였고, 선원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9월 6~9일, [[마데이라 제도]]에 정박하였을 때 아문센은 승무원들에게 자신들의 목표가 남극임을 알렸다. 프레스트루드와 얄마르 요한센이 뒤쳐졌고, 쇠약해진 프레스트루드는 요한센의 보살핌 덕분에 간신히 베이스 캠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요한센은 베이스 캠프로 돌아온 뒤에 공개적으로 아문센을 비난하고 나섰다. 이 상황이 지휘권에 좋지 않다고 판단한 아문센은, 요한센을 본대에서 하차시키기로 마음 먹고 요한센을 프레스트루드의 지휘 아래 두어서 '킹 에드워드 7세 랜드'를 탐험하게 했다. 나이도, 경험도 적고, 군대 계급도 소위였던 프레스트루드는 중대장이었던 요한센보다 낮았다. 요한센은 아문센에게 절교당했고 고립되었다. 1911년 1월 14일, 15,938해리의 항해 끝에 프람 호는 발퓌시 만에 도착했다. 개 110마리와 9명의 대원이 육지에 남았다. 2월 14일, 남위 80도에 최초의 비축물 저장 기지를 구축했다. 2월 22일, 다른 비축물 저장 기지를 위해서 출발했다. 3월 3일, 남위 81도에 비축물 기지 구축. 3월 8일, 남위 82도에 비축물 기지 구축. 이로서 남위 80~82도에 1.5톤 이상의 비축물을 저장했다. 4월 21일부터 기지에 틀어박혔으며, 아문센 일행은 4개월 동안 해를 거의 보지 못했다. 평균 기온은 영하 38도, 최저 기온은 영하 60도에 육박했다. 8월 24일에야 다시 해가 떴다. 9월 8일~16일, 아문센은 8명의 대원, 7대의 썰매로 남극으로 출발하였으나, 눈보라가 불어닥쳐 돌아오고 만다. 10월 20일, 5명의 대원, 4대의 썰매, 그리고 48마리의 개와 함께 남극으로 출발했다. 12월 8일, 섀클턴이 세웠던 남위 88도 23분에 도달했다. 12월 14일 15시 무렵, 아문센 일행은 남극점(남위 90도)에 도착했다. 12월 18일 귀향을 위해 출발했다. 1912년 1월 26일, 99일의 기간 동안 1,400마일의 행군을 한 끝에 아문센 일행은 새벽 4시경 무사히 남극 기지 프람하임에 도착했다. 2월 3일, 호주 태즈매니아 주 [[호바트]]를 목적지로 하여 프람 호가 출발했다. 3월 7일, 프람 호는 호주의 호바트에 도착하였다. 사이가 나빠졌던 요한센은 여기서 프람 호를 떠나 다른 루트로 노르웨이로 돌아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